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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059
성명
한자 金東鎭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3 훈격 애국장
1913. 9월 경북 영주에서 임병찬(林炳瓚) 등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직한 독립의군부에 참여하였으며 1919. 3월에는 유림 대표의 일인으로서 파리장서에 서명, 1925년 경북 유리의 군자금 모집사건에 관여하여 안동(安東)·영주(榮州)·봉화(奉化) 등지의 자금모집을 위해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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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14년 5월경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대일(對日) 국권반환 요구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경에 붙잡혀 20여 일 동안 구류 상태에서 취조를 받았다. 독립의군부는 한말 의병항쟁의 전통을 이어 국내 독립군 항쟁의 중심기관이 될 목적으로 임병찬(林炳瓚) 등의 주창에 의해 1913년 9월부터 전국의 면 단위까지 조직을 갖춘 군대식 편제의 비밀결사였다. 어느 정도 조직이 갖추어지면서 독립의군부는 한국민족이 일제 식민지 통치에 승복하기는커녕 절대 반대하고 있음을 내외로 알리면서 국권회복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일본의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등 일제 관헌들에게 국권반환 요구서를 수시로 보낼 계획으로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던 중 일경에 발각되어 관계자 53명이 피검된 것이었다.

1919년 3월에는 곽종석(郭鍾錫)을 위시한 유림(儒林) 대표 137인의 일원으로 독립청원을 위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고 40여 일간 투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925년 음력 10월 초순경, 경상남북도 일원의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금하여 중국 땅 내몽고(內蒙古)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건설할 계획으로 비밀리에 입국한 김창숙(金昌淑)의 부탁을 받아 영주·안동(安東)·봉화(奉化) 3개 군(郡) 지역에서 모금 책임을 맡은 정수기(鄭守基)의 활동을 조력하였는데, 이 일로 일경에 붙잡혀 10여 일간 취조를 받으면서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93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357면
  • 동아일보(1928. 8. 10, 8. 11)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77·179·247·248·284·286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160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동진 자 : 국경(國卿), 호 : 정산(貞山), 석포(石圃) 경상북도 영주(榮州) 파리장서운동, 유림단사건
본문
1867년 1월 8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부석면(浮石面) 상석리(上石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헌규(金獻奎), 어머니는 안동 권씨 권상곤(權相錕)이다.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정산(貞山) 또는 석포(石圃)이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909년 순흥군 향교 직원(直員)을 지냈다. 1913년 국권 회복을 위해 임병찬(林炳瓚)·허위(許蔿) 등 유림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는 국권 반환을 촉구하는 투서를 전국으로 발송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1914년 4~5월 사이에 임병찬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영주경찰서에 체포되어 20여 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1919년 4월 한말 대표적 유림인 김창숙(金昌淑)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보내는 서명운동을 추진하자,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 등과 함께 이에 참여하여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이 사실은 4월 12일 경북 성주군(星州郡)에서의 만세 시위 운동을 빌미로 발각되었고, 40여 일간 투옥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를 제1차 유림단사건이라고 한다. 1925년 8월 김창숙이 주도한 제2차 파리장서운동 때 김창숙의 사촌동생인 김창백(金昌百)이 자금 모집원으로 활동해 달라고 제안하자, 동의하고 함께 활동하였다. 1926년 4월 2일 김화식(金華植) 등 관련자 600여 명과 같이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1개월간 구금되고 옥고를 겪었다. 이를 제2차 유림단사건이라 한다. 저술로 12권 7책의 『정산집(貞山集)』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상북도 영주시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 대구광역시 달서구
2 비석 파리장서 비 경상남도 거창군
3 비석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 서울특별시 중구
4 비석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전라북도 정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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