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14년 5월경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의 대일(對日) 국권반환 요구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경에 붙잡혀 20여 일 동안 구류 상태에서 취조를 받았다. 독립의군부는 한말 의병항쟁의 전통을 이어 국내 독립군 항쟁의 중심기관이 될 목적으로 임병찬(林炳瓚) 등의 주창에 의해 1913년 9월부터 전국의 면 단위까지 조직을 갖춘 군대식 편제의 비밀결사였다. 어느 정도 조직이 갖추어지면서 독립의군부는 한국민족이 일제 식민지 통치에 승복하기는커녕 절대 반대하고 있음을 내외로 알리면서 국권회복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일본의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등 일제 관헌들에게 국권반환 요구서를 수시로 보낼 계획으로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던 중 일경에 발각되어 관계자 53명이 피검된 것이었다.
1919년 3월에는 곽종석(郭鍾錫)을 위시한 유림(儒林) 대표 137인의 일원으로 독립청원을 위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고 40여 일간 투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925년 음력 10월 초순경, 경상남북도 일원의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금하여 중국 땅 내몽고(內蒙古)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건설할 계획으로 비밀리에 입국한 김창숙(金昌淑)의 부탁을 받아 영주·안동(安東)·봉화(奉化) 3개 군(郡) 지역에서 모금 책임을 맡은 정수기(鄭守基)의 활동을 조력하였는데, 이 일로 일경에 붙잡혀 10여 일간 취조를 받으면서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93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357면
- 동아일보(1928. 8. 10, 8. 11)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77·179·247·248·284·286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1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