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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0148
성명
한자 金季鎭
이명 承哲, 金承哲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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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5 훈격 애족장
1930년 3월 경북(慶北) 영주(榮州)에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평은지부(平恩支部) 위원장,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榮州支會) 집행위원으로서 송위길(宋渭吉), 이상을(李相乙)과 함께 격문 배포계획에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려 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執行猶豫) 3년을 받고 그 후 1932년 12월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赤色農民組合再建鬪爭委員會)에 가입하여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고 메이데이, 러시아혁명기념일 등의 축하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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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영주(榮州) 지역을 무대로 사회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한 항일지사로서 1930년 3월 경북 영주에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평은지부(平恩支部) 위원장,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그는 송위길(宋渭吉)·이상을(李相乙) 등과 함께 격문배포계획에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2년 12월 영주에서 안상윤(安相潤)을 비롯하여 김종진(金鍾鎭)·김명진(金命鎭) 등과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赤色農民組合再建鬪爭委員會)를 조직하였다. 투쟁위원회에는 적색농민조합·반제동맹·독서회 등을 두었는데, 김계진은 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이들은 독서회를 개최하여 청소년에게 의식교육을 하고 조합원을 포섭하였으며, 메이데이, 러시아혁명기념일 등의 축하기념식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안동의 독립운동사(金喜坤, 1999) 370∼372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30. 4. 23)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34. 7. 2)
  • 朝鮮日報(1934. 3. 8)
  • 東亞日報(1933. 7. 14∼15·8. 12, 1934. 3. 8·6. 16·6. 27·8. 12)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法院 檢事局)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1976) 1388∼13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권 777∼77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계진 승철(承哲) 경상북도 영주(榮州) 영주격문사건,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
본문
1907년 1월 24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평은면(平恩面) 수도리(水島里)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21년 3월 영주공립보통학교 2학년을 퇴학하였으며,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 뒤 영주에서 청년운동과 신간회 운동에 참여하였다. 영주의 청년운동은 1927년 11월 영주청년동맹의 결성으로 더욱 발전하였는데, 수도리가 있는 평은에는 1927년 2월 7일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가 설립되었다. 그는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에 가입한 이래 1929년 이후 평은지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8월 29일 영주청년회 대강당에서 신간회영주지회가 설립되었다. 신간회 복대표대회 이후인 1929년 7월 30일 신간회영주지회 임시대회에서 기존의 회장제를 집행위원제로, 간사회를 상무집행위원회로 변경하면서 임원 개선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때 전경석·권병극·김화진·김기원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민족 협동 전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10월 무렵 영주군 평은면 수도리(무섬마을)에 선성 김씨 집안의 신지식 청년들이 학동을 교육하기 위해 아도서숙(亞道書塾)을 설립하였다. 아도서숙의 운영위원이었으며, 김화진(金華鎭)·김종진(金鍾鎭)·김성규(金性奎)·김종규(金宗奎)·김명진(金命鎭)·김광진(金光鎭)·김희규(金熙奎)·박찬하(朴贊夏) 등 9명의 운영위원을 중심으로, 문맹 퇴치·우리글 교육·민족 정신 앙양 등을 교육 방침으로 운영하였다. 아도서숙은 1933년 7월 무렵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고 말았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영주에서 4차례에 걸쳐 펼쳐진 격문 사건 중 2차 격문 사건을 전개하였다. 1930년 3월 송위길(宋渭吉), 이상을(李相乙) 등은 「만천하 피압박 대중에게 격함」이라는 격문을 작성한 뒤 같은 달 19일에서 20일 사이 김회길(金會吉)·정회복(鄭會福)·박승헌(朴勝憲) 등과 함께 격문을 살포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달 24일 영주 장날 정오를 기해 이상을과 김회길은 쌀 시장 방면, 송위길과 정회복은 어시장 방면에서 일제히 격문을 살포하고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포목 시장 방면을 맡았다. 격문 말미에 ‘전 세계 무산계급 해방 만세, 전 조선 무산계급 해방 만세’를 적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획득하자, 모든 악법을 철폐하자, 소위 광주학생사건 피고들의 무죄를 주장하자,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조선총독 폭압 정치에 항쟁하자, 투옥 동지를 탈환하자’ 등의 구호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장날 하루 전인 23일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모두 잡힘으로써 격문 살포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2차 격문 사건 관련자 6명에 대한 재판이 1930년 4월 23일 대구지방법원 4호 법정에서 열렸다. 정회복·박승헌 등과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2차 격문 사건의 변호사들은 격문 살포 이전에 검거되었으므로 출판법은 맞으나 치안유지법 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30년대 영주군 공산주의협의회의 혁명적농민조합과 반제동맹 조직이 일제의 탄압에 의해 좌절된 뒤 1932년 2월 김종진(金鍾鎭)·김명진(金命鎭) 등과 함께 안동콤그룹과 관계하여 적농재건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안동콤그룹의 안상윤이 수도리 박승서(朴勝緖)의 집에 숨어 있으면서 김종진·김명진 등과 함께 영주의 운동을 부활시키기 위해 영주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적농재건투쟁위원회의 적농부를 맡은 김종진의 권유로 동 위원회에 가입하였다. ‘작년 영주 사건 때문에 희생된 동지의 뜻을 이어 운동을 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전부 단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수도리를 중심으로 이미 와해한 적색농조를 재건하자’라는 제안이었다. 가입한 그 날로 김종진·김용진·박찬상·김명진 등과 함께 적색농민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김종진이 책임위원, 박찬상과 김용진은 위원 겸 교양을 분담하는 등 부서를 정하였고, 이때 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1933년 5월에서 7월 사이 영주와 봉화, 안동에 몰아닥친 일제 단속으로 모두 145명이 일제 경찰에 잡혔다. 1934년 7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 대구지방법원 1930-04-23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1년6월 미결구류일수 300일을 본형에산입 집행유예 4년 대구지방법원형사부 1934-07-02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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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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