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3월 경북 (慶北) 영주 (榮州) 에서 조선청년총동맹 (朝鮮靑年總同盟) 평은지부 (平恩支部) 위원장, 신간회 (新幹會) 영주지회 (榮州支會) 집행위원으로서 송위길 (宋渭吉) , 이상을 (李相乙) 과 함께 격문 배포계획에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려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執行猶豫) 3년을 받고 그 후 1932년 12월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 (赤色農民組合再建鬪爭委員會) 에 가입하여 적색농민조합 (赤色農民組合) 을 조직하고 메이데이, 러시아혁명기념일 등의 축하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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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영주(榮州) 지역을 무대로 사회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한 항일지사로서 1930년 3월 경북 영주에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평은지부(平恩支部) 위원장,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그는 송위길(宋渭吉)·이상을(李相乙) 등과 함께 격문배포계획에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32년 12월 영주에서 안상윤(安相潤)을 비롯하여 김종진(金鍾鎭)·김명진(金命鎭) 등과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赤色農民組合再建鬪爭委員會)를 조직하였다. 투쟁위원회에는 적색농민조합·반제동맹·독서회 등을 두었는데, 김계진은 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이들은 독서회를 개최하여 청소년에게 의식교육을 하고 조합원을 포섭하였으며, 메이데이, 러시아혁명기념일 등의 축하기념식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안동의 독립운동사(金喜坤, 1999) 370∼372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30. 4. 23)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34. 7. 2)
- 朝鮮日報(1934. 3. 8)
- 東亞日報(1933. 7. 14∼15·8. 12, 1934. 3. 8·6. 16·6. 27·8. 12)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法院 檢事局)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1976) 1388∼13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권 777∼7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