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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6619
성명
한자 權錫煥
이명 權鳳象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2 훈격 애족장
1930. 1. 31 경북(慶北) 영주군(榮州郡) 풍기면(豊基面)에서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榮州支會)영주농민조합(榮州農民組合)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가입(加入) 활동(活動)하면서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호응(呼應)하기 위하여 도내(道內) (各)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학생(學生)청년단체원(靑年團體員)규합(糾合)하여 독립운동(獨立運動)을 일으킬 것을 촉구(促求)하는 내용(內容)항일(抗日) 격문(檄文)제작(製作) 살포(撒布)하는 등의 활동(活動)을 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8월을 받아 미결기간(未決期間)합산(合算)하여 1년 1월간(月間)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30년 1월 31일 경북 영주군 풍기면(豊基面)에서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榮州支會) 영주농민조합 및 조선청년동맹에 가입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기 위해 동면(同面) 풍기읍내(豊基邑內) 정을규(鄭乙奎) 집에서 안기석(安基錫)·김준상(金俊相) 등과 함께 면민의 궐기를 촉구하는 항일격문 300여매를 등사한 후 2월 1일 윤차경(尹次慶)과 함께 영주공립보통학교(榮州公立普通學校)에 들어가 격문 70여매를 살포(撒布)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7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과 보안법, 주거침입 등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779∼787면
  • 조선일보(1930. 4. 18, 6. 5)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권석환 - 경상북도 영주(榮州)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조시위
본문
1907년 8월 14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풍기면(豐基面) 백화리(白和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가계나 유년 시절 성장 및 수학 과정 등은 알 수 없다. 1927년 8월 27일 조직된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榮州支會)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1929년 3월 이후 영주농민조합(榮州農民組合)에 가담하였다. 영주농민조합의 전신은 1923년 조직된 풍기소작조합(豊基小作組合)으로, 강응진(姜膺鎭)·강택진(姜宅鎭)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회운동 단체였다. 영주농민조합은 1929년 3월 이후 김동필(金東弼)·이의백(李儀白)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이산(伊山)·금계(金鷄)·영주 등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주로 소작료 조사, 농업 노동자 보호, 농민 야학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 소식이 경북 영주군에도 전해졌다. 이에 1930년 1월 신간회 영주지회와 영주농민조합, 그리고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영주청년동맹(榮州靑年同盟)의 회원이던 안기석(安基錫)·김준상(金俊相)·윤차경(尹次慶) 등과 함께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기로 결의하였다. 그 일환으로 공립보통학교 학생과 각종 청년 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청년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하기로 결의하였다. 안기석과 김준상은 1월 28일부터 31일까지 영주 군내 청년들에게 배포할 격문을 작성하였다. 첫 번째로 작성된 문건의 제목은 「학생 여러분에게 알림」이었다. 여기에는 “혈기 있고 혼이 있는 학생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 광주학생사건이 동기가 되어 경성을 중심으로 각 지방은 물론 전문, 중학, 보통학교에 이르기까지 전 조선 300여 학교, 수십만 명의 학생이 자유를 부르짖고 만세 소리가 2개월간 계속되고 있다. … 어찌하여 여러분들은 잠자고 있는가! 일어나서 운동장으로, 시장으로 뛰어나가 조선 민족 해방 만세를 외치자”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두 번째 문건의 제목은 「전 조선적 학생 대검거와 조선총독 폭압정치와 야만적 경찰의 압박에 전 조선 피압박 계급 대중은 일제히 분기하라」였다. 여기에는 “일본제국주의 무법한 정치와 포악한 조선 총독 정치는 어디까지나 전 조선 민족의 피를 착취하려는 것으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있다. … 최근의 광주학생사건을 중심으로 전국적 300여 학교의 10만의 학생들이 이미 2개월간에 걸쳐서 자유를 부르짖고 만세 소리는 전 조선 피압박 계급을 위한, 전 세계 평화를 위한 정당한 외침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우리 학생들을 검거하고 야만적 혹형(酷刑)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바로 이때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두 문건 모두 야만적인 일본의 통치에 항거하여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키자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문건을 읽고 공감하여 2월 2일 다수의 인쇄물을 가지고 윤차경의 집으로 갔다. 윤차경과 함께 학생들을 독립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주공립학교(榮州公立普通學校)에 70여 매의 격문을 뿌리며 독립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하였다. 안기석과 김준상도 풍기공립보통학교(豊基公立普通學校), 풍기농민조합 등에 격문을 뿌렸다. 군내에서 독립운동을 선동한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 경찰은 주모자들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7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주거침입 등의 죄명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융희3년 법률 제6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주거침입 징역 8월 대구지방법원형사부 1930-07-09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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