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3·1운동 직전 중국 동북지역으로 건너가 1919년 3월 지린[吉林]에서 결성된 길림군정사(吉林軍政司) 재무부원으로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힘을 쏟았다. 국내 활동을 위해 동년 6·7월경 귀국한 그는 10월 서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연통제(聯通制) 기관으로 조선13도총간부를 조직하고 교섭부장을 맡았다. 이때 그는 경북 일대를 무대로 독립운동자금 수백원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20년 말 연통제 조직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체포되어 1921년 6월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농민운동과 같은 대중운동에 관심을 쏟으며 1923년 1월 풍기소작인조합(豊基小作人組合)과 동년 9월 전조선노농대회준비위원회(全朝鮮勞農大會準備委員會)의 발기에 참여했다. 또한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절감하고 고려공산청년동맹(高麗共産靑年同盟)에 참여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고, 1923년 10월 조선노농대회준비회(朝鮮勞農大會準備會)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이 결성되자 중앙위원·상무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농민운동 지도자로 활동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42권 181∼183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18∼19면
- 時代日報(1924. 10. 22)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高等警察關係年表(1923. 11. 1)
- 東亞日報(1921. 6. 14, 1922. 5. 20, 1923. 4. 26∼27·10. 3·10. 5·10. 31, 1924. 4. 21∼22·5. 4·12. 8, 1925. 1. 22·2, 3, 1926.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