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강진(康津) 사람이다.1936년 4월 광주고보가 교명을 바꾼 광주서중학교에 입학하여 광주학생 운동을 통한 민족의식을 일깨웠으며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에 유학하였다. 동년 12월 귀국한 그는 유몽룡(劉夢龍)·강한수(姜漢秀) 등이 조직한 항일비밀결사 무등회(無等會)에 가입하였다. 동지들은 식민지정책 반대·일어사용 금지·학병지원제도 반대·일(日)상품 불매운동 등을 결의하고 고향 또는 직장 등에서 활동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담양의 무정(武貞)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주만우(朱萬尤)가 현지에서 활동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무등회의 조직이 노출되었다. 이에 1942년 1월에 그도 붙잡혔으며, 수개월간의 구속 끝에 동년 12월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45년 5월 서중학교에서 일본인 교사에 아부하는 학생에 대한 집단구타사건이 일어나 주동학생이 구속되자 전교생이 동맹휴학을 단행하게 되었으며, 그 배후조종에 무등회가 관련되었다하여 동년 7월 다시 구류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9개월간의 심한 고문을 받고 1944년 5월에 구류집행정지로 다시 석방되었다. 이 기간 중에 무등회원 4명은 고문으로 옥사하기도 하였다. 출감 후에도 그는 요시찰인으로 광주대화숙(大和塾)에 수용되어 감시를 받다가 8·15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조선총독부보고서(1941. 3월 서중학교졸업)
- 대구복심법원 구류갱신 지령서(1944. 5. 13 구류집행정지)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806·807·814면
- 광주학생독립운동사 86∼89·707·7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