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한경석은 1927년 10월 서울에서 고학당(苦學堂) 학생 정관진(丁寬鎭)의 권유로 조선학생혁명당(朝鮮學生革命黨)에 가입하고, 1929년 3월 조선학생전위동맹으로 개칭된 동조직의 중앙집행위원으로서 조직부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5월 관훈동 29번지 자신의 집에서 중앙부원회를 개최하고 각자 재학하는 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6월 같은 장소에서 제3회 중앙부원회를 개최하고 표어를 결정하였다. 9월에도 자신의 집에서 제4회 중앙부원회를 개최하고 각자 규합한 동지들을 소개하였다. 11월에 봉익동 112번지 김순희(金淳熙) 집에서 제5회 중앙부원회를 개최하고 전라남도 광주에서 발발한 광주학생운동에 관련해 경성부 내의 조선인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을 선동하기 위하여 정종근(鄭鍾根)에게 격문을 인쇄 살포할 것과 김태래(金泰來)에게 격문의 원고를 작성케 할 것을 결의하였다.
한경석은 1929년 12월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31년 5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200일 통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대전형무소로 이감 중 조선민족독립만세 등을 고창하여 1933년 1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이 추가되어 옥고를 치르고 1935년 5월 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0. 9. 14~17, 1931. 4. 9·19, 5. 12, 1935. 5. 3)
- 騎驢隨筆(宋相燾) 399, 412면
- 現代史資料(강덕상) 29권 377~37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3집 285~287, 293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31. 5. 11)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33.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