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아산(牙山) 사람이다.
그는 경성의전(京城醫專)을 졸업하고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황해도 일부 및 전라·충청도를 돌아다니며 청년들을 모아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을 추진, 지휘하고 본부로 돌아오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평양(平壤)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1922년 가족을 동반하고 노령(露領)으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다시 만주(滿洲)로 들어가 신민부(新民府) 부원으로 활동하던 중, 아버지 이규풍(李奎豊)이 사망하자 북경(北京)으로 가서 지하공작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장처명(張處明) 등과 함께 체포되어, 일제의 악독한 고문으로 인해 사경에 이르게 되자 가석방되어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1944년 5월 29일 끝내 별세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