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남 순천(順天) 출신으로 1908년 12월 순천군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의병부대들의 전투력은 한층 높아졌다. 전라남도의 경우, 1907년 9월 결성된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는 대표적인 연합의병진으로 장성의 기삼연을 중심으로 나주의 김준(金準)과 김율(金律) 형제, 임실의 전해산(全海山), 함평의 심남일(沈南一) 등이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찬와가 소속되어 활동했던 소속 의병부대는 알 수 없으나 의병부대의 부장(副將)으로 1908년 12월 25일 귀환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에 순천경찰서 일본인 순사 2명, 한인 순사 5명, 수비대 병사 5명에 의해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銃殺 및 逮捕의 건(1908. 12. 25)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7) 제16권, 5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