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전라남도 순천(順天) 사람이다.
그는 이 지방의 유림지사(儒林志士)로서 일찍이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호남에서 거의(擧義)할 때 의병(義兵)에 참여하였으며, 1914년에 임병찬(林炳瓚)이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을 때에는 호남유사(湖南有司)로서 활약한 불굴의 애국지사였다.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곳에서도 1919년 4월 13일의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하기로 유흥주(劉興柱) 등과 상의하고 이날 정오경 「조선독립기」·「대한독립기」라고 쓴 2개의 대형 깃발을 가지고 읍내 서문 밖으로 나가서, 박태문(朴太文)·배윤주(裵潤柱)·배형주(裵炯柱)·김선제(金善濟) 등과 같이 1백 50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서문 안으로 시위행진하였다.
당시 서문안에는 일본군 수비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다가 시위군중을 제지하려 하였으나, 시위군중에게 밀려 형세를 당해내지 못하자, 일본 헌병과 보병 6명이 응원 출동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를 탄압하였다.
이때 그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일군에게 항쟁하다가 그들이 휘두른 총검에 부상당한 몸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이해,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540∼154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2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87·577·594·595·596면
- 판결문(1919. 6. 30 대구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