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연기군의 만세시위는 3.1운동을 직접 목격한 이수욱의 주도로 3월 13일 전의시장에서 시작되었다. 북면과 조치원은 3월 23일 인접한 청주에서 전개된 횃불만세운동에 호응하면서 시작되었다. 남면에서는 3월 23일 인접 면민들과 함께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3월 31일에는 대대적인 횃불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진의리 김봉식(金鳳植), 월산리 임영복(林永福), 양화리 조의순(趙義淳)·임덕문은 이덕민의 집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오후 9시경 ‘대한국만세’를 부르며 양화리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임덕화(林德化)를 설득하여 아월산에서 주민 100여 명과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진의리로 이동하여 임영철(林營喆)을 설득하고 뒷산에 주민들을 모이게 하여 함께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다시 송담리로 이동하였을 때, 이미 송담리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어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임덕문은 연기군 남면의 횃불독립만세운동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19. 4. 18)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18~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