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허항은 전북 무주 출신으로 1909년 8월 충북 영동에서 조석우(趙錫祐)를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유력한 의병장들의 전사와 일본 군경의 탄압으로 점차 의병활동이 위축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 운봉 출신의 조석우는 1909년 8월 23일 충북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영국사(寧國寺)에서 장군선(張君先)·조덕장(趙德章)·권덕원(權德元) 등과 모임을 가지고 삼남대장(三南大將)이라 하여 총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장군선·조덕장·권덕원은 부장(副將)이 되고, 허항(許恒) 등 8명은 병졸(兵卒)이 되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본인을 처단하고 철도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파괴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격문을 띄우는 한편, 장정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허항은 양남면(陽南面) 일대에서 군사를 모집하면서 거사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었다.
허항은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유형(流刑) 2년에 처해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1909.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