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북 무주 출신으로 문태수의진(文泰洙義陣)에 화약을 제조하여 공급하였다.
문태수는 대한제국 군대의 하사 출신으로 경남 안의(安義) 사람이다.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하기 위하여 상경했다가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을 예방하고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로 뜻을 세우고 지리산에 들어가 거의하였다. 1906년 9월 중순경 장수 양악(陽岳)에서 박춘실(朴春實)을 선봉장으로 삼았으며, 동년 9월 하순에는 장수읍을 함락시키고 일본군을 추격하던 중 무주 구천동에서 전성범(全誠範)을 중군장으로 영입하였다. 1908년 12월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에 추대되어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뒤 무주 덕유산을 근거지로 영남·호남·호서 일대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1908년 2월 28일 무주주재소 급습, 동년 4월 장수읍 공격, 그리고 1909년 1월 지례, 4월 24일 용담, 5월 남원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나아가 충북의 영동·청산·옥천 등지에서도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10년 서울로 진격하여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위시하여 일본군을 처단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1911년 8월 17일 일본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이용이는 1909년 2월부터 3월까지 전북 무주에서 문태수의 부하 김상진(金尙鎭)의 의뢰를 받아 화약을 제조하여 공급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1909. 6.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1, 602·6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