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무주(茂朱)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구한국군이 해산되자, 거의할 것을 결의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다. 문금서(文今西)와 함께 부하 150명을 거느리고 무주와 경상남도 안의(安義)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11월 30일경 황덕화(黃德化)·황이만(黃二萬) 등 부하 8∼9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라북도 금산군에 사는 음대보(陰大甫)와 김내삼(金來三)의 집에 들어가 의병운동을 위한 군자금으로 금 23냥을 모금하였다.
1908년 4월 10일 문태서와 함께 장수(長水)읍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마침 주재소의 일경들은 모두 의병 토벌작전에 동원되어 나가고 한인순사 1명만 있을 따름이었다. 따라서 별다른 저항 없이 주재소의 기물을 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학교·군청 등의 부속물의 건물, 그리고 일인가옥 13동을 불태우고 유유히 무주 쪽으로 퇴거하였다.
그러나 토벌대의 추격을 받아 무주의 칠연계곡(七淵溪谷)에서 유진(留陣)중 일군의 기습을 받아 의병 100여명이 모두 이곳에서 옥쇄하였다.
1975년 지방민들은 이 의로운 유해를 모아 묘소를 정화하고 7연백의총(七淵百義塚)이라 명명하였다. 신명선이 순국한 후 그의 아우가 계속 의진을 이끌고 활약하였다.
즉 1908년 4월말에 장수 읍을 습격하여 많은 전과를 남긴 것 등이 그 아우의 활약상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547·55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3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