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달성(達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28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公山面) 미대동(美垈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미대동은 원래 채씨 집성촌으로, 채경식은 3월 8일 대구에서의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으면서 만세운동에 대한 결심을 굳혀 갔다.
그러던 중 채학기(蔡鶴基)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4월 26일 오후 10시에 마을 동쪽편의 여봉산(礪峯山)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한데 이어, 4월 28일에는 채경식을 비롯하여 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凞覺)·채명원(蔡命元)·채송대(蔡松大)·권재갑(權再甲) 등 8인의 청년들이 주도하여 여봉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만세시위 직후 출동한 일본군경에 의해 붙잡혀 대구 일본군헌병대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19년 5월 2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262∼12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