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달성군(達城郡)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교세확립과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유근성은 1921년 체포될 때까지 1924년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하고 황제에 취임하여 한국이 독립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01년 강일순(姜一淳)이 세운 흠치교는 주문에 ‘흠치흠치(吽哆吽哆)’라는 말이 있어 교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교의 조직은 교주 차경석(車京錫)이 있고, 그 아래에 60인의 고문이 있었으며, 고문 아래에 6인조-8인조-12인조-15인조 등의 조직을 갖추고, 치성금을 내어 일부는 제사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전라도 정읍의 본부에 보내져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
유근성은 1920년 들어 여러 사람에게 포교하여 흠치교에 가입케 하였다.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의 모집에 힘쓰던 유근성은 1921년 9월 22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12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1919년 제령 제7호(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4년(미결구류 30일 통산)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공소하였다. 그러나 1922년 3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고,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이 또한 1922년 5월 16일 기각되면서 징역 4년(미결구류 60일 통산)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21. 12. 12)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2. 3. 23)
- 判決文(高等法院:1922. 5. 16)
- 刑事事件簿(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