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10. 현금 및
1921. 5.
1922. 4.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당진(唐津)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1919년 10월 현금과 사유 토지(2백석 추수분)를 매각하여 임시정부(臨時政府)의 자금 모집원 강태동(姜泰東)에게 전달하였다. 그후 1921년 5월 사유 토지(270석 추수분)를 다시 매각하여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이회영(李會榮)을 만나 독립운동자금으로 기탁하였으며, 자금조달을 명받고 1922년 4월 국내로 잠입하였다가 붙잡혔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이어 1924년 가을과 1925년 2차에 걸쳐 사유토지(1차 230석분, 2차 350석분)를 매각하고 상해(上海)로 건너가 이시영(李始榮)에게 전달하고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김창숙(金昌淑)·신익희(申翼熙) 등과 접촉하였다. 또한 1929년 잔여토지(210석분)를 처분하여 이시영에게 군자금으로 전달하고 이시영의 명으로 1932년부터 광복때까지 자금조달을 위해 평북 귀성(龜城)과 삭주(朔州) 등지에서 광산을 경영하면서 동지들의 비밀연락 및 회합·은닉 장소로 활용하였다.
1945년 2월 김 구(金九)로부터 국내에 밀파된 행동대원들의 군량(軍糧) 조달을 의뢰받고 주선해 주다가 기밀이 누설되어 이루지 못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6면
- 확증서(李始榮·金炳魯·申翼熙·李甲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