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충남 면천(沔川) 사람이다.
1907년 정정현(鄭定鉉)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군대까지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의병투쟁이 재개되었으며 해산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의병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도중삼은 이 같은 시기인 1907년 10월 6일 이경칠(李敬七)의 권유로 경기도 수원 일대에서 활약하던 정정현 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는 1907년 10월 9일 의병 55명과 함께 수원에서 배를 타고 충남 당진의 한진(漢津)에 상륙하여 당진분파소(唐津分派所)를 습격하고 군내면(郡內面) 북창(北倉)에서 수원 안중리(安中里)로 돌아왔다. 그는 11월 11일 다시 면천군 한진에 상륙하여 예산 신례원(新禮院)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면천군 이서면(二西面)에서 의병을 모집하던 중 남원포(南元浦)에서 당진과 면천분파소에 파견된 일본순사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홍주분견소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면천군 마산면(馬山面) 산 속에서 포승을 끊고 탈출을 기도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에 관한 編冊(暴徒 斬殺의 件, 1907.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