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1136
성명
한자 金道一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04 훈격 애국장
1919. 4. 4. 충남(忠南)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에서 면장(面長) 이인정(李寅正)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천의(天宜)장터에 운집한 천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獄苦)옥사(獄死)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4월 4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면장 이인정(李寅正)과 면직원 이대하(李大夏), 송재만(宋在萬) 등은 4월 4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4월 3일 대호지면장 명의로 각 구장 앞으로 도로수선(道路修繕)에 관한 공문을 보내 4월 4일 주민들을 공식적으로 동원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4월 3일 한운석에게 시위군중에게 나누어 줄 애국가를 작사케 하여 1,000여 매를 인쇄하였고, 독립선언서도 등사하여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4월 4일 대호지면 앞 광장에 도로수선을 위장하여 6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대형 태극기가 휘날렸다. 이인정이 군중 앞에 나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따라 외쳤다. 시위군중은 이인정과 송재만을 필두로 장정리를 거쳐 천의시장(天宜市場)으로 행진하였다. 사전 연락으로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군중들이 천의시장에 이르렀을 때 주재소의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제지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은 군중의 기세에 눌려 만세를 몇 번 따라 부르고 도망쳤다.

시위군중들은 오후 4시경까지 정미면사무소(貞美面事務所)와 천의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일단 해산하였다. 이때 당진경찰서(唐津警察署)에서 지원 나온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와 충돌하였다. 다급해진 경찰이 발포하자 분노한 군중들은 주재소로 달려가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며 격렬히 항쟁하였다.

김도일은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공주형무소(公州刑務所)에서 수감 중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5월 21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公州地方法院 檢事局)
  • 除籍謄本(金道一)
  • 唐津地域 抗日獨立運動史(唐津文化院, 1991) 137∼18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도일 - 충청남도 서산(瑞山) 대호지면 만세시위
본문
1886년 7월 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마중리에서 태어났다. 대호지면의 만세 시위는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 유생들과 천도교(天道敎) 세력이 연합하여 치밀하게 추진되었다. 이 지역은 구한말부터 천도교도(옛 동학교도)가 많아 항일사상이 강한 고장이었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례하고 귀향한 남주원(南柱元) 등 도호의숙의 유생들과 송전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천도교 세력 및 대호지면장 이인정(李寅正)·이대하(李大夏)·송재만(宋在萬) 등 면사무소 직원들은 당시 5일장이 열리던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를 만세 운동 장소로 결정하고, 4월 4일 대대적인 만세 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주민들의 참여는 면사무소의 공식적인 행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인정 면장은 각 마을의 구장(區長)들에게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의 문서를 발부하여 “4월 4일 면내 가호당 주민 1명씩 출석하여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라는 내용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한 600여 명의 주민이 대호지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이인정과 유생들이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었고, 실제 목적은 만세 시위임을 밝히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7킬로미터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 정미면의 주민까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 시위를 제지하는 천의주재소와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당황하여 발포하자, 이들에 대항하여 천의주재소를 습격하는 데 참여하였다. 만세 시위 직후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의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주재소 습격의 주모자 급으로 지목되어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옥고를 겪게 되었다. 동월 21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었으나, 그동안 계속된 고문으로 24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재판부는 동월 26일 사망으로 공소권을 소멸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위패)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대호지·천의장터4·4독립만세운동기념탑 충청남도 당진시
2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3 사당 창의사 충청남도 당진시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과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도일(관리번호:961136)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