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20년 8월부터 임시정부 특파원(臨時政府特派員) 이현수(李賢壽)를 도와 군자금 모금을 위한 경고문(警告文)·긴급경고문·자유신보(自由新報)·물품불구매고지서(物品不購買告知書)·납세거절협박문(納稅拒絶脅迫文)·포고문(布告文)·유고문(諭告文)·독립공채(獨立公債) 모집에 관한 인정서(認定書) 작성·인쇄하였다. 이들은 인쇄된 문건을 경북도내의 한국인 군수·면장 등 관리들과 부호들에게 우송하는 한편 심야에 대구 시내의 가로상에 살포하며 항일민족의식의 고취와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또한 이현수·서장환(徐章煥)·곽종해(郭鍾海) 등과 함께 1923년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알림으로써 각국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워싱턴군축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대구·평양·전주 등지의 외국인 선교사와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의사 아벤에게 독립청원서를 우송하고 워싱턴회의에 즈음하여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내용의 ≪자유지(自由誌)≫를 인쇄하여 신문사와 국내 각지에 배포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일경에 붙잡혀 1923년 3월경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21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8면
- 매일신보(1922. 음력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