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달성(達城) 사람이다.
1919년 대구에서의 제1차 만세운동 후 학생들과 시민들의 항일저항의식은 더욱 높아갔고 3월 9일 오후 3시경에는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을 비롯한 약 150여명의 학생들이 재차 의거를 단행하기 위해 달성공원(達城公園)으로 모여들다가 일군경에 탐지되어 강제 해산되었다.
당시 그는 계성학교 학생으로 고등보통학교생 박남준(朴南俊)·김재소(金在炤)와 같은 학교 박태현(朴泰鉉) 등과 이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이들은 태극기를 제작하여 계성학교생을 시위 대열에 참가하도록 주도하고 수백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케 하는 등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해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4. 18 大邱地方法院)
- 啓聖五十年史(1956年) 85·86年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5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7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64∼127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