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문태익(文泰翼) 의진의 부장으로 전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 직후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강제 체결하면서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거족적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언론과 교육부문에 의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의 의병운동이었다. 특히 의병운동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강진여는 이같은 시기에 문태익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문태익 의진의 부장(副將)을 맡았던 그는 1908년 4월 전북 장수(長水)를 습격하고, 무주(茂朱)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대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4월 18일 전북 황산(黃山)에서 군자금 3,100냥을 징수하던 중, 신종삼의 밀고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경남 거창(居昌)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 본부로 끌려가던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10집 2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