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경기도 가평(加平) 사람으로, 1919년 3월 15일 이윤석(李胤錫)·장기영(張基榮) 등과 가평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3월 14일 이윤석과 만나 독립선언서를 보고 그 취지에 찬성하여,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에 3월 15일 오전 9시에 독립만세시위를 가평에서 전개하니 참여하라는 격문을 이윤석이 2통, 그가 1통을 작성하여, 이윤석이 이곡리(梨谷里)·화악리(華岳里)·소법리(所法里) 일대의 연락을 담당하기로 하고, 자신은 적목리(赤木里)·단녕리(湍寧里)·과대리(過大里)·백비리(栢比里) 일대를 담당하였다.
3월 15일 오시 9시에 그는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자신이 제작한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청으로 행진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학교와 면사무소로 시위 행진하였다.
이 때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이윤석 등 1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헌병대 분견소로 강제 연행되었다.
이튿날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결국 이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85∼1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501∼511면